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니콜라이 2세 (문단 편집) ==== [[제1차 세계 대전]] 참전 ==== [include(틀:상세 내용, 문서명=7월 위기)] [[사라예보 사건]]으로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이 사라예보 사건의 배후인 [[세르비아 왕국]]을 공격하자 니콜라이 2세는 슬라브 형제국인 세르비아 왕국을 지원하고자 러시아 제국에 총동원령을 내렸다. 하지만 이는 오스트리아-헝가리의 [[삼국 동맹|동맹]]인 [[독일 제국]]을 자극했고, 결과적으로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사라예보 사건은 세계대전으로 확산된다. 다만 니콜라이 2세는 사촌이었던 독일의 [[카이저]] [[빌헬름 2세]]와 계속 전보를 주고받으며 개전만은 끝까지 막아보려 했지만, 양국의 군부는 전쟁을 원하고 있었고, 니콜라이나 빌헬름의 의지에 상관없이 전쟁은 발발했다. 전쟁 초기에는 슬라브 민족주의와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, 애국심 폭주 등 러시아 제국민들도 전쟁을 지지하였으나 [[러시아 제국군]]은 오랜 기간의 쇠퇴로 인해 약해질대로 약해진 [[유럽의 환자]] [[오스만 제국군]]과 여러가지 문제점으로 허우대만 멀쩡하던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군]]과의 전투에서만 선전했을 뿐 세계 최고 수준의 정예군이었던 [[독일 제국군]] 상대로는 처참하게 패하기만 했으며 당시 러시아 제국의 빈약한 공업기반과 낮은 경제력으로 전 러시아가 파탄에 휘말린다. 그리고 점차 러시아 내부에서 전쟁 중단과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 늘어나고 이를 우려한 [[영국]]과 [[프랑스 제3공화국|프랑스]]도 러시아의 전선 이탈을 막고자 니콜라이 2세에게 민심을 다독이는 개혁을 할 것을 부탁하였지만 니콜라이 2세는 이를 내정간섭으로만 여기고 거절한다. 그 결과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생활고로 고생받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전선에서는 탈영병이 속출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